― 스틱 하나와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걷다
(사진 설명: 은은한 달빛과 도심의 불빛이 물길 위에 포개어지는 밤의 불광천)
글쓴이 Desmond
아침 공기는 서늘하고 맑다.
하천을 따라 길게 뻗은 초록빛 산책로 위로 나의 스틱이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닿는다.
‘톡, 톡.’
약간은 불편한 다리를 묵묵히 받쳐주는 이 작은 쇳소리는 오늘 아침 내가 세상과 나누는 가장 정직한 대화의 시작이다.
눈앞의 불광천은 평화롭다. 가을로 접어드는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드리워 있고, 물가 갈대숲 사이로 왜가리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붉은색 자전거도로와 초록빛 보행로가 나란히 달리는 길 위로 동네 사람들도 저마다의 아침을 열고 있다. 누군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누군가는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굳은 팔다리를 힘차게 뻗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그저 하루를 시작하는 동네 운동 코스이거나 출근길을 재촉하는 쾌적한 지름길일 것이다.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이루고, 밤이면 음악에 맞춰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분수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러나 나는 걷다가 가끔 멈춘다.
스틱에 잠시 몸을 기대고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시선은 어느 순간 눈앞의 풍경을 지나 이 하천이 품고 있을 보이지 않는 시간의 지층으로 내려간다.
스스로를 ‘히스토리컬 플라뇌르(Historical Flâneur)’, 역사적 산책자라고 부르기로 한 뒤부터 내게 걷는다는 것은 공간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곳을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보는 일이 되었다.
역사는 유리 진열장 안에 갇힌 박제가 아니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흙과 아스팔트 아래에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도 역사는 계속 쌓이고 있다.
(사진 설명: 이른 아침, 초록빛 산책로를 따라 저마다의 보폭으로 하루를 열어가는 불광천의 사람들)
불광천(佛光川). 이 물길은 예전에 연서내, 연신내 같은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물길의 상류, 지금의 은평구 일대에는 조선시대 연서역(延曙驛)이 있었다. 그리고 1623년 인조반정의 밤, 능양군은 이곳 연서역으로 나아가 장단부사 이서가 이끌고 온 병력과 합류했다.
여기까지는 기록이 전하는 역사다. 그런데 나는 延曙(연서)라는 두 글자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춘다.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새벽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 이름이 인조반정 때문에 생겨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밤, 실제로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어둠이 지나기를 기다렸다는 사실과 그 두 글자가 우연처럼 겹쳐진다. 그러면 산책자의 상상은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간다.
그날 밤에도 이곳에 물이 흐르고 있었을까.
어둠 속에서 말고삐를 움켜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말발굽이 젖은 흙을 누르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가 함께 들리지는 않았을까.
나는 알 수 없다. 기록은 거기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이 말해주는 데까지는 역사로 걷고, 기록이 멈춘 자리부터는 상상임을 밝히고 천천히 걸어간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사진 설명: 시대를 건너며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과 기다림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불광천의 교각과 물길)
왕조가 바뀌고 권력이 움직였던 밤만이 이 물길의 역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연서역을 오가던 관리와 역졸들, 한양의 서북쪽을 오가던 이름 모를 나그네들도 이 물길 어디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여울가에 앉아 가족의 옷을 빨던 여인들, 물을 길어 밭으로 향하던 농민들, 장터로 향하던 사람들, 어딘가를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사람들.
더 멀리 상상해보면 문자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도 누군가는 이 물을 건넜고, 물고기를 잡고, 짐승을 쫓고, 이 근처 어딘가에서 저녁 연기를 피워 올렸을 것이다.
그들의 이름은 아무 데에도 남아 있지 않다. 역사의 정사(正史)는 왕과 장수와 사건을 기록하지만, 물길은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기억은 사라져도 물은 계속 흐른다. 눈물도 흘러갔을 것이고 땀도 섞였을 것이며, 아이들의 웃음과 누군가의 한숨도 물가에 머물렀다가 사라졌을 것이다.
산책로를 걷다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천변 둑길을 올라 서대문구 북가좌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불광천에서 불과 한 블록 벗어났을 뿐인데 공기의 결이 확연히 달라진다.
현대식 빌딩과 다세대 주택들을 지나 그 뒤쪽 블록으로 더 깊숙이 발걸음을 옮기자,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날것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길가에 어지럽게 쌓인 플라스틱 상자와 온갖 폐자재들, 낡은 단층 상가와 자바라 철문 너머로 이어지는 넓고 거친 마당. 녹슨 철골 트러스와 슬레이트 차양이 비스듬히 하늘을 가린 어두침침한 골목 안길.
시간이 한꺼번에 철거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어 선 듯한 이곳은, 1978년 문을 연 옛 ‘서부중앙시장’의 뒷골목이자 속살이었다.
(사진 설명: 낡은 골조와 차양 아래, 옛 서부중앙시장 안쪽으로 이어지는 세월의 통로)
1960년대와 70년대, 도심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삶의 벼랑 끝으로 밀려난 철거민과 도시 빈민들이 이곳 불광천변과 모래내 일대로 모여들었다. 하천변 자투리땅에는 넝마주이들의 합숙소와 움막이 들어섰고, 그들이 주워 온 고철·파지·빈 병을 사들이는 고물상들이 자리 잡았다.
시장이 정식으로 들어서기 전, 논밭과 공터가 어지럽게 널려 있던 이 뒷블록은 넝마주이들이 묵직한 손수레(리어카)와 망태기를 부려놓고 폐품을 분류하던 거친 작업장이자 야적장이었다.
시장이 형성된 후에도 생계의 맞물림은 끈끈했다. 시장 내 상점들에서 쏟아져 나온 빈 상자와 마대자루는 넝마주이들의 귀한 하루 몫이 되었고,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고물을 넘긴 이들은 시장 뒷골목의 허름한 선술집과 국밥집으로 찾아와 거친 숨을 고르고 쓰린 속을 달랬다.
누군가 버린 폐품이 누군가에게는 자식의 학용품이 되고 가족의 끼니가 되었던 곳.
낡은 단층 작업장과 트럭이 서 있는 넓은 마당은 화려한 서울의 변두리에서 가장 밑바닥 생계를 온몸으로 밀어 올렸던 이들의 고단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사진 설명: 넝마주이들의 손수레가 오가며 고철과 파지를 분류하던 야적장의 기억을 품은 뒷블록 마당)
불광천의 물길을 따라 더 아래로 내려가면 난지도의 역사와도 만난다. 1978년부터 서울의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한 난지도에서도 폐품을 골라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불광천변의 고물상과 난지도의 쓰레기 산은 그렇게 멀지 않은 물길 위에서 하나의 거대한 생존의 그물망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삶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싶지는 않다. 가난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악취와 먼지, 추위와 더위 속에서 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삶 또한 함부로 미화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기억하고 싶다. 그들도 이 도시를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걷는 깨끗한 거리 아래에는 이름 없이 도시의 하루를 견뎌낸 수많은 사람의 시간이 겹겹이 깔려 있다.
그들의 처절했던 생존의 터전을 바라보며, 나는 내 발걸음의 시작을 돌아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왜 멀쩡한 직장을 제 발로 걸어 나와 길 위로 나섰느냐고 사람들은 묻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여유나 낭만이 아니었다. 벼랑 끝에서 살기 위해 내린 가장 절박한 선택이었다.
몸은 무너져 내리고 혈관은 굳어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직장생활 중 중풍을 맞았던 이가 오직 걷기로 회복했다는 이야기, 매일 산책로를 걸어 혈압을 정상으로 돌려놓았다는 이들의 경험담이 막막했던 내게는 한 줄기 동아줄 같았다.
밥벌이의 쳇바퀴 속에서 나를 소진시키는 대신, 나는 내 목숨을 살려내기 위해 일터를 버리고 길 위로 나섰다.
내게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닌 ‘생명길’이었고, 한 걸음 한 걸음은 살기 위해 들이쉬는 처절한 ‘호흡’이었다.
처음에는 온몸의 무게를 스틱에 의지한 채 이를 악물고 발을 떼어야 했다. 그러나 매일 불광천의 흙과 보행로를 밟아온 정직한 시간 속에서, 기적처럼 다리에 힘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굳이 스틱을 짚지 않아도 내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스틱을 집에 두지 않고 배낭 뒤에 소중히 꽂아 넣고 다닌다.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 내 몸을 받쳐주었던 생명의 은인이자, 내가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를 잊지 않게 해주는 단단한 징표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생각하다 문득 아주 먼 곳의 한 소년이 떠오른다.
1970년대 초, 호롱불이 켜지던 전라남도의 외딴 섬 신의도. 바다를 바라보며 저 물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던 까까머리 소년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그때의 나는 불광천도 몰랐고, 난지도도 몰랐으며, 언젠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바다 건너편이 궁금했다. 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가 궁금했다.
세월이 흘러 그 소년은 청년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고, 다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스틱 하나를 배낭에 꽂은 채 불광천을 걷는다.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생도 하나의 물길인지 모른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분명하지만 어디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는 길.
작은 개울이 다른 물을 만나 강이 되고 결국 바다로 향하듯, 사람 역시 수많은 사람과 장소와 시간을 만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
(사진 설명: 고단했던 삶의 터전 위에 들어서서 주민들에게 푸른 그늘과 쉼을 내어주는 개구쟁이어린이공원)
오늘날 불광천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한때 비가 와야 물이 흐르던 건천은 자연형 하천 정비와 유지용수 공급을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어갔다. 사람들은 물가에서 잉어를 바라보고, 봄이면 벚꽃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다.
불광천을 따라 내려가면 물길은 홍제천과 만나고, 그 너머로 월드컵공원과 난지도의 시간이 이어진다. 한때 거대한 쓰레기 산이었던 난지도에는 이제 숲이 자라고 사람들이 산책한다.
시간은 흔적을 지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상처 위에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며칠 전 밤에 걸었던 불광천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푸른 밤하늘 아래 음악에 맞춰 오색 물줄기가 솟아오르던 음악분수. 물빛을 바라보며 웃던 아이들과 연인들.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역사란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위대한 영웅들의 기록만이 아니다. 어두운 시대를 묵묵히 견뎌낸 사람들의 삶 위에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가 다시 덧대어진다.
그리고 먼 훗날 누군가에게는 오늘 아침 우리가 걷고 웃었던 이 순간 역시 오래된 시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진 설명: 칠흑 같은 밤하늘과 물길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불광천의 음악분수)
나는 등 뒤의 스틱을 조용히 느끼며 다시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더 이상 서두르지 않는다. 다리에 차오른 힘으로 땅을 단단히 밀어내며 내 호흡대로 걸어간다.
빨리 걷는 것보다 길 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숨결을 조금이라도 오래 바라보고, 그들의 시간을 마음속에 담는 일이 이제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이름 모를 나그네의 짚신 자국 위에,
반정군의 서늘했던 말발굽 소리 위에,
서부중앙시장 골목과 공터를 오가던 넝마주이의 묵직한 손수레 바퀴 자국 위에,
그리고 오늘 아침 땀 흘리며 달리는 이웃들의 힘찬 발소리 위에,
살기 위해 길 위로 나선 나의 정직한 발자국 하나를 조용히 포개어 놓는다.
내딛는 걸음마다 되살아나는 호흡.
그리고 다시 한 걸음.
길은 목적지만을 향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먼저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는 일인지도 모른다.
불광천의 물은 오늘도 아무 말 없이 흐른다. 나는 그 물길 곁을 천천히 걷는다.
기록이 말해주는 데까지는 역사로,
기록이 멈춘 자리부터는 상상임을 밝히고.
그렇게 오늘도,
스틱 하나와 함께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걷는다.






